깊은 맛의 기억
솔직히 말해서, 어릴 땐 추어탕이 뭔지도 몰랐어요. 그냥 ‘미꾸라지로 만든 국’이라고 하면 괜히 좀 징그럽게 느껴졌거든요. 할머니가 “이거 먹으면 힘이 불끈 난다~” 하시면서 자주 끓여주셨는데, 그때마다 저는 국물만 쪽쪽 마시고 미꾸라지는 슬쩍 피해서 먹었죠. 근데,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냄새랑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 풍경이 참 그립네요.
추어탕의 역사가 꽤 오래됐다던데, 사실 그런 건 나중에야 알았어요. 그냥 ‘옛날부터 먹던 음식’ 정도로만 생각했지, 고려시대부터 있었다는 건 인터넷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됐죠. “오, 나름 유서 깊은 음식이었구나?” 하면서 괜히 뿌듯해지기도 하고. 그리고 조선시대 양반들은 미꾸라지를 더럽다고 안 먹었다는 얘길 듣고, ‘아니, 이 맛있는 걸 왜?’ 싶어서 한참 웃었네요. 진짜, 사람 입맛이란 게 시대 따라 참 달라지는 것 같아요.
동의보감에 미꾸라지가 몸에 좋다고 쓰여 있다는데, 그걸 굳이 안 읽어봐도 할머니가 “이거 먹으면 감기 안 걸려!” 하시던 말이 떠올라요.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, 왠지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는 건 사실이었으니까요. 추어탕 한 그릇에 담긴 역사와 정성, 그리고 가족의 기억이 참 소중하게 느껴져요. 아, 괜히 또 먹고 싶어 지네!
추어탕 레시피, 말처럼 쉽지 않더라
제가 직접 추어탕을 끓여본 건 사실 얼마 안 됐어요. 엄마가 해주시던 거야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됐는데, 막상 혼자 해보려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. 미꾸라지 손질부터가 진짜 난관이었죠.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만지는데, 미끈미끈해서 자꾸 손에서 미끄러지고, 한 번은 싱크대에 탈출해서 한참을 쫓아다녔어요. 그때 저희 집 고양이도 신나서 같이 쫓아다니고… 지금 생각하면 좀 웃겨요.
지역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다던데, 저는 전라도식이랑 서울식 둘 다 먹어봤거든요. 전라도식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서 끓이는데, 처음엔 그게 좀 부담스럽더라고요. 근데 한 숟갈 떠먹으니까, 그 구수함이란! 서울식은 국물이 좀 더 맵고 얼큰해서 해장할 때 딱이었어요. 친구랑 “이거 먹고 나면 속이 확 풀린다”며 땀 뻘뻘 흘리면서 먹었던 기억도 나네요.
요즘엔 편의점에서도 추어탕 파는 거 아세요? 진짜 세상 좋아졌어요. 물론, 직접 끓인 거랑은 비교가 안 되지만, 바쁠 때는 그거 데워서 시래기 좀 더 넣고 먹으면 꽤 괜찮아요. 아, 근데 산초가루는 꼭 챙기세요. 그거 안 넣으면 뭔가 허전하더라고요. 저도 한 번 깜빡하고 안 넣었다가, “뭔가 2% 부족하다…”며 혼자 중얼거렸던 적이 있어요.
추어탕, 몸에 좋은 건 알겠는데…
추어탕이 건강식이라는 건 다들 알잖아요? 솔직히 저는 ‘보양식’ 하면 삼계탕이나 장어구이만 생각했는데, 추어탕도 그 못지않게 몸에 좋대요. 미꾸라지에 단백질, 칼슘, 비타민 뭐 이런 게 듬뿍 들어있다는데… 사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, 먹고 나면 왠지 힘이 나는 기분이 들긴 해요. 할머니가 “이거 먹고 공부 열심히 해라~” 하시던 말이 괜히 떠오르네요.
특히 가을에 먹는 추어탕은 진짜 별미예요. 미꾸라지가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그런지, 국물이 더 진하고 고소하더라고요. 근데, 한 번은 너무 많이 먹어서 속이 더부룩한 적도 있어요. 역시 뭐든 적당히가 중요한 것 같아요. 그리고 추어탕 먹고 나면 입안에 산초향이 남는데, 그게 싫다는 친구도 있더라고요. 저는 오히려 그게 중독성 있어서 좋던데… 사람마다 취향이 참 다르죠?
추어탕이 뼈 건강에도 좋고, 피로해소에도 좋고, 뭐 노화 방지에도 좋다는데, 사실 그런 거 다 떠나서 그냥 따뜻한 국물 한 그릇에 위로받는 느낌이 더 큰 것 같아요. 요즘처럼 바쁜 날, 힘들고 지칠 때 추어탕 한 그릇 먹으면 “아, 그래도 오늘 잘 살았다!” 싶은 거 있잖아요. 뭐, 너무 거창한가? 하여튼, 저한테 추어탕은 그냥 건강식 그 이상이에요. 가족, 추억, 그리고 소소한 행복이 담긴 그런 음식이랄까요.